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새벽 1시 반쯤 도착해서 주치의 분을 직접 뵙지는 못하고 간호사 분과 가족들에게 상황을 전해들었다. 좌측 뇌내출혈로 운동과 인지능력을 담당하는 부위를 걸쳐 계란만한 크기로 응고가 된 상황이라고 한다. 경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수술 후 회복이 되도 우측 마비, 인지장애가 동반될 수 있다고 들었을 땐 믿기지가 않았다. 고향인 남해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계셨는데 현관 앞 흙밭에 쓰러진 채로 두시간정도 방치되셨다고 한다. 65세인 연세에 걸맞지 않게 정말 정정한 분이셨다. 178정도로 건장하고 체구도 있으신 편이라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을 못했다. 24년부터 내가 취준과 직장 스트레스로 말썽을 부려도 이성적이면서도 힘차게 조언을 주실만큼 정신력도 강인한 편이셨는데 그런 아버지께서 인지장애가 오는 모습이 연상이 안된다. 기계 엔지니어 출신으로 작년까지만 해도 파이썬도 하시고, 나보다 먼저 러스트 얘길 꺼낼만큼 공학과 내 일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나도 주변에 그런 얘길 나눌 사람이 아버지 뿐이었기에 통화로라도 얘기를 자주 했다. 그런데 내가 상경 이후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르게 퇴사까지 한 터에 LLM으로 인한 비용까지 발생하니 ‘혹시 근 2년 간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으셨던 걸까.’ 싶다. 동생은 고향인 부산에서 초등교사로 자리를 잡았고, 어머니도 교직 연금이 나오는 상황이라 나만 정착하면 이제 우리 가족은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죄책감이 크다.
아버지께선 내가 본인과 동문인 부산대 컴퓨터과에 진학한 걸 굉장히 좋아하셨다. 취준 때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그렇게 갔던 첫 회사도 맘에 들어하셔서 내심 기뻤다. 얼마 전 DDP에서 수상했을 당시 ‘이제 어엿한 개발자라고 불러도 되겠구만!‘라고 하실 땐 뿌듯하기도 했지만 힘들게 얻었던 첫 직장을 나온 상태였기에 그 말을 듣기가 머쓱했었다.
내 상경 뿐 아니라 다방면의 활동을 지지해주셨던 만큼 이번 일에 대한 충격이 크다. 저녁 9시에 고모로부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이런 상황까지일 줄은 몰랐다. 남해에서 진주까지 갈 정도면 수술은 각오했지만 버스 안에서 Cursor로 남은 작업과 블로그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있었을만큼 큰 걱정을 하진 않고 있었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어머니께서 자주 쓰러지셔서 응급실을 오갈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별탈없이 잘 해결이 됐었기에 병원과 수술실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었다. 워낙 나보다도 힘이 넘치고 정정하셨던 분이라 더 안일하게 생각했나보다. 운이 따라야하겠지만 아버지의 인지능력만큼은 유지됐으면 싶다. 평소에도 총기와 에너지가 넘치셨던 분이니만큼 무기력해진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내 욕심일 순 있지만 그러기를 바란다. 정말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수술이 잘 풀리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