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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혈종 65mL / 우: 혈종 제거 완료, 관 제거
아버지 뇌의 혈종은 목표치까지 빠진 상태다. 남은 일부는 뇌에 꽂은 관을 제하고, 자연 상태로 줄일 예정이라 한다.
진료 일정대로라면 금요일날 의식 여부를 확인했어야 하지만, 병원에 실려온 시기에 준코마였고, 혈종의 크기가 65mL로 큰 편이었던 걸 감안해 최대한 시간을 두고 뇌와 아버지의 상태가 양호해지면 뇌에 투입되는 수면제 양을 줄이고 의식을 체크해 본다는 소견을 들었다.
이제 혈종으로 생사를 고민할만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나, 뇌출혈 환자의 경우 환자 상태의 등락이 심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니, 보다 안전한 방향을 택하셨다고 한다. 뇌부종 징후가 예상보다 훨씬 낮게 나와서 관련 약 투입을 한 단계 낮췄다고 한다.
뇌 손실이 존재하는 만큼 인지, 운동 장애는 피할 순 없겠지만 명확한 징후는 의식을 회복하고, 재활을 거치는 시기부터 확인을 할 수 있다.
수요일부터 주말까지 아버지 면회차 많은 친척분들이 다녀가셨다.
아버지께서 장남이셨기 때문에 다루는 가족의 범위가 넓었다. 아버지 기준으로 직계에서 사촌, 8촌까지의 친인척 분들이 매일 5-6명씩 다녀가신다. 오랫동안 못뵀던 친인척 분들을 뵈면서 아버지의 경과를 설명을 드리다보니 지치는 면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시니 감사한 일이다. 첫 진단이 절망적이었던 만큼 다들 걱정이 많으셨다.
아버지께서 의식을 찾더라도 장애의 정도가 심할 경우, 재활부터 보필까지 해야하는 상황을 알기에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남기셨다.
진주에서 숙소를 뺀 이후로는 아침 9시에 출발해 11시-12시 진주 면회, 오후 2시 30분이 되면 남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토요일엔 사촌들이 찾아왔기에 회포도 풀고 얘기도 나눌 겸, 막내 아버지의 집인 김해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아버지 3형제는 자녀가 두명씩 있어 사촌이 많다. 모두 또래기도 해서 어린시절부터 왕래가 잦았다.
3형제가 오랜시간 끈끈하셨기에 더 그런 면이 있다. 아버지의 수술 동의서에 처음 사인한 분도 막내 아버지셨다.
1차로 끝날 줄 알았던 술자리가 2차, 3차까지 가며 든든하게 얻어먹을 수 있었다. 면회기간동안 병원 옆 국밥을 주식처럼 먹었던 입장에선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 식사였다. 한우로 시작해 안주로 삼을 수 있는 음식들은 종류별로 먹은 듯 싶다.
1차에선 주로 근황과 추억 얘기가 주였다. 초등학생 시절 영재원을 다니기도 했고, 경상도 지역에선 자대의 위상이 높았기에 다들 관련 얘기를 하곤 한다. 아버지께서 내 전직장과 일, 수상까지의 얘기를 많이 하셨나 보다.
라쿠텐의 브랜드 위상에 비해 한국지사는 중소기업에 가까웠다고 말해도 잘 전달이 안되긴 한다.
라쿠텐 심포니 한국지사 한정으로 클라우드는 신설이었기에 한국계는 가르쳐주는 인력도 없고, CNP/CNS는 아는 사람마저 희소한 상황이었다고 하면 '서울 깍쟁이들이 그렇지.'라며 넘기곤 하셨다. 한국 SW가 소위 꺼드럭에 비해 실질적인 아웃풋이 안나오는 건 다들 대충은 아는 모양이다.
막내 아버지께선 '넌 머리가 살짝 돌아있기도 하고(?), 돈 쓰는 법도 모르니, 쭉 프로그램을 짜면서 돈버는 기계처럼 살아야한다.'라고 하셨지만, '그걸 누가 시켜줘야 하죠.'라는 입장이라 별 말은 하지 않았다. 퇴사 이후엔 Claude 위주로 쓰고 있기도 해서 워크 플로우를 설명하기도 애매했다. 그래도 다들 AI가 코딩의 많은 부분을 자동화하며 대체하고 있다는 얘기까진 전해들은 듯 싶었다. 이번에 제작한 resume와 자체 포트폴리오 사이트, PWA 앱정도만 보여주고 있다. 최대한 보기 쉽게 정리해뒀다고 생각했으나, 타직렬 사람들에겐 업계용으로 보이는 듯 했다.
동생과 어머니는 '돈 적당히 쓰고 마무리하고 재취업하자.'는 입장이라 슥슥 읽고 '그래서 언제 내는데'를 더 궁금해했다. 우수상 상금이 150만원 가량으로 제작비를 메꾸기엔 턱없이 적기도 해서 재취업말곤 대안이 없다. 심지어 세금 제하고 1/5해서 받은 금액이 22만원이다.
실질적인 MVP 개발은 한 달 전에 끝났고 E2E로 배포된 기간도 한달은 족히 넘었으니 뭐.. 나머지는 내 욕심으로 올리고 있어 머쓱하다.
이제 쌩신입이나 대학생도 아닌 만큼, '아무리 MVP라도 동시접속자가 10명도 못버티는 건 포폴로 내기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디벨롭을 이어온 게 꽤 멀리까지 왔다.
2차 때는 아버지와 관련된 심각한 얘기가 오갔다.
아버지는 실비를 따로 챙기지 않을 만큼 건강 관리에 무심했다. 실은 무심했다기보단 회피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건강 검진을 안받은지도 10년이 넘어, 큰 병이 발견되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선 어머니께 기대야하는 상황이니 더 그랬던 듯 싶다.
아버지와 막내 아버지 두 분 다 남성적인 기질이 강한 편이라 본인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죽는 걸 희망하셨다.
아버지께서 처음 병원으로 이송되셨을 때 막내 아버지께선 '수술에 동의하지 않고, 보내드리려 했다.'고 한다.
첫 진단이 절망적이어서 그랬는지 막내 아버지는 그 시기부터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듯 싶었다.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부터 장남 이상의 역할을 도맡아 하셨고, 왕래도 잦았던 만큼 힘든 결정이셨을 거다.
사촌들과 투박한 표현이 오가는 와중에서도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장애의 정도가 심하다면 우리 가족이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다.
'우리 형은 이미 없다. 형의 거죽을 붙잡으려 하다 너희 가족이 파멸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실 정도였다.
'네 아버지께서 살아난 만큼 이제부터 죽이면 살인이다. 되려 너보다 오래 살 수도 있다. 가족에게 가해지는 심적, 경제적 고통의 강도와 기간이 길어지면 너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관록이 있으신 만큼 주변에서 비슷한 케이스를 많이 보셔서 더 그렇게 여기셨나 보다.
사촌들 중 막내 아버지 쪽은 막내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둘째 아버지 쪽은 이 얘기에 반감을 크게 가졌다.
둘의 말싸움을 중재하는데 진이 빠질 정도였다. 나또한 아버지께서 쓰러진 당일부터 남겨뒀듯 이미 이전 아버지는 없을 거라 여긴다.
막내 아버지와의 대화 땐 unlearn을 예시로 들어 내 입장을 설명했었다. SW 개발에는 unlearn이라는 말이 있다. 산업의 변화가 급격한 만큼 '이전에 배웠던 지식 혹은 해자를 빠르게 버리는 태도'가 주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 아버지는 묻어둔 채로 새 아버지를 맞이하려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아버지께서 제2의 인생을 마음에 들어하시길 바란다.'고 말은 했지만 나 역시 확신하기 어렵다.
막내 아버지와 사촌들은 최대한 희망을 버리는 편을 추천했고, 그게 현실적인 생각이라는 점에 나 또한 동의한다.

이코에코 작업으로 돌아오면 클린 아키텍처 마이그레이션은 chat을 제외하고 모두 마무리가 된 상태다.
진주, 김해, 남해를 오간만큼 그다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어서 주로 오후부터 새벽 시간에 작업을 해뒀다.
chat의 LangGraph 도입, 에이전틱 플로우 선정을 위한 관련 md들을 디벨롭하며 다음 두 안 중 어디로 나아갈지 고민을 하는 상황이다.
1. chat의 clean architecture 마이그레이션과 에이전트 디벨롭을 분리해 진행한다.
2. 코드 생산에 반영되는 Context가 한정된 만큼 클린 아키텍처 작업을 분리해 선행하더라도, LLM 에이전트(Opus 4.5)에게 Chat의 전체 코드베이스와 맥락이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에이전틱 디벨롭까지 반영한 채로 마이그레이션을 진행한다.
현재는 후자로 맘이 기운 상태다. 30일을 마감일로 정한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때문에 자체 포트폴리오를 우선 제작해 띄워뒀다. PPT로 제작하려 했으나, 이미 관련 작업 맥락과 기록들을 블로그에 남겨뒀기도 하고 Opus의 프론트 퍼포먼스가 좋기에 포트폴리오 랜딩 페이지를 만드는 방향을 택했다.
결과물은 만족스럽다. From Chat to Agent를 마치면 각 섹터에 컨택스트를 집중하도록 에이전트들을 분리해 랜딩 페이지를 디벨롭할 예정이다. 만약 정해둔 데드라인까지 에이전틱 도입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타임라인에서 Chat 에이전트는 제할 거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다가 토요일에 3차까지 달린 만큼 일요일엔 숙취가 강했다. 푹 자고 일어난 뒤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일 아버지의 의식을 깨워본다고 하니 관련 걱정은 그 이후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해피 월요일 되기 바란다.'아버지 간병'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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